취준생 후배님의 질문과 나의 답변 기록

AI 시대에 신입이 쌓아야 할 역량과 그 역량을 어디서 쌓는 게 좋은가

  • 요즘 많이들 고민하는 내용인 것 같네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비즈니스/조직의 컨텍스트에 맞게 판단-수정-리뷰-통제하는 역량'은 AI 시대 이전에도 중요한 역량이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AI 시대가 온다고 해서 신입이 쌓아야 할 역량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현업에서도 큰 변화를 맞이하여 다들 헤매고 있는 중이라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AI 활용 역량을 신입에게 요구한다는 말도 돌고 있죠. 그런데 AI 활용 역량이라는 게 뭘까요? 에이전트에게 일 잘 시키는 것? 컨텍스트 관리 잘하고, 스킬 구성 잘하고, 하네스 구성하고, 최신 트렌드와 사용 팁 잘 따라가는 것? 이런 걸 잘하면 훌륭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건 얼리어답터들보다 한 발짝 뒤에서 움직이며 그들을 따라 하면 금방 얻을 수 있는 가짜 역량입니다. SNS만 봐도 비전문가가 금방 따라 하는 것들인데 중요한 역량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예전에 구글 검색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앞으로 검색을 잘하는 게 핵심 역량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검색은 핵심 역량이 아니라 당연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AI 활용도 인간의 기존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도구로서 받아들이는 걸 추천합니다.

  • 결국 작업하려는 것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 지시하지도, 검토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합니다. 실행은 되는 결과물이 나오지만 이것을 실제 대규모 서비스로 오랜 기간 장애를 최소화하며 생산 속도 저하 없이 운영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간 또한 역량이 출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AI를 그만큼 활용해서 어려운 현실 문제들을 엔지니어링하며 비즈니스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전에 요구하던 신입의 역량과 자세에서 달라진 부분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다만, 도구가 달라졌으니 같은 역량을 준비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겠죠.

  • 예전부터 학생분들에게 조언하던 내용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서 대부분 실천까지 못해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용자를 유치하고 운영까지 해보는 경험입니다. AI의 도움만 있다면 이제는 풀스택으로 경험해 볼 수 있겠죠. 사용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도 해보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AI에게 무조건 맡기기보다 함께 검토하면서 궁금한 것도 생길 것입니다. 그것을 해소하면서 경험과 지식도 함께 탑다운(Top-down) 방향으로 쌓아나갈 수 있습니다. 전에는 팀원을 구하기도 어렵고 지속하기도 어려워서 이를 이루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AI와 함께하면 실서비스를 운영하는 경험을 누구나 취준생 레벨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기업에서도 그 경험을 매우 좋게 평가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성장하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바이브 코딩만으로 끝나버리고, 정작 내 역량은 높아지는 것 없이 면접에서 탈탈 털리다 끝나겠죠.

  • 이렇게 조언하면 ‘Claude Code 구독 비용이 비싸다, 클라우드 운영 비용이 비싸다’ 등 다양한 변명거리들이 떠오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앞으로 평생 업으로 삼을 것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셰프를 꿈꾸는 사람들은 학원비나 유학비를 써야 하고, 악기를 다루는 학생들은 비싼 악기를 구매해서 관리해야 합니다. 개발자는 다른 전문 직종에 비해 취업 준비 비용이 매우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운 좋게 서비스가 잘되면 돈도 벌 수 있으니까요. 열정이 있다면, 진심이라면, 간절하다면 그만큼 시간과 돈을 투자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은 유명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AI로 누구나 제로베이스에서 동작하는 결과물을 '딸깍'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코드베이스 내에서 커뮤니티의 규칙과 기존 설계 문맥을 파악하며 개발하는 것은 여전히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전자는 프롬프트 몇 줄로 가능할지 몰라도, 후자는 기존 아키텍처의 흐름을 이해하고 AI가 뱉은 코드가 기존 시스템에 미칠 사이드 이펙트까지 인간이 통제하고 검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오픈소스 기여는 실용적인 AI 활용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입니다. 진정한 AI 활용 역량이란 아무것도 없는 '그린필드'에서 토이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레거시가 얽혀 있는 '브라운필드'에서 AI를 도구로서 사용하여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 유명 오픈소스의 수많은 이슈를 분석하고, AI를 활용해 기존 코드와 조화를 이루는 PR을 날려 문제를 해결하고 메인테이너의 승인을 받아내는 과정 자체가 이미 브라운필드에서의 검증된 협업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진짜' AI 활용 역량입니다. 고로, 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오픈소스 무대를 AI 로 증폭된 탄탄한 기존 엔지니어링 역량과 협업 역량을 증명하는 용도로 꼭 활용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